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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 21:13-25] "악용" 운영자 2019-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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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사기21:13-25절 개역개정

13. 온 회중이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평화를 공포하게 하였더니

14. 그 때에 베냐민이 돌아온지라 이에 이스라엘 사람이 야베스 길르앗 여자들 중에서 살려 둔 여자들을 그들에게 주었으나 아직도 부족하므로

15. 백성들이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쳤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빠지게 하셨음이었더라

16. 회중의 장로들이 이르되 베냐민의 여인이 다 멸절되었으니 이제 그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하여야 아내를 얻게 할까 하고

17. 또 이르되 베냐민 중 도망하여 살아 남은 자에게 마땅히 기업이 있어야 하리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사라짐이 없으리라

18.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못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맹세하여 이르기를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하였음이로다 하니라

19. 또 이르되 보라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쪽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 하고

20. 베냐민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21. 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하나를 붙들어 가지고 자기의 아내로 삼아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22. 만일 그의 아버지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시비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하건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의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

23. 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들 중에서 자기들의 숫자대로 붙들어 아내로 삼아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건축하고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24.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에서 각기 자기의 지파,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갔으니 곧 각기 그 곳에서 나와서 자기의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Day 48]

​•21:13-25

"악용"

 

 

오늘 본문은 사사기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지파와 화해하며 평화를 회복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들의 화해 가운데서 잘못된 부분들이 보입니다.

분명히 화해하며 평화로 나아가는 길인데, 오늘 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렇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신부를 아직 맞이하지 못한 베냐민 지파의 200명을 위해

실로의 여자들이 춤추러 나오거든 붙들어서 자신들의 아내로 삼으라고 말합니다.

베냐민 지파를 위하는 마음과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이 내놓은 해결책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 여인들의 어떠한 동의도 없이 이루어진 해결책이었습니다.

모두를 위한 회복과 배려의 해결책이 아닌, 일부 사람들의 이해와 상황을 위한 미봉책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부분은 그 여인들이 나와 춤을 추는 날

즉 납치를 감행하는 날이 여호와의 명절이라는 것입니다.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으니 그때 납치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한해에 한번, 여호와의 명절을 맞이하여 기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춤을 추러 나오는

그 여인들을 자신들의 이해와 화해와 욕망을 채우기 위한 대상으로 납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명절은 하나님의 날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이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이고

하나님의 크심을 다시 한 번 개인과 민족가운데 되새기며 감사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원래의 의미는 모두 망각한 채,

그날을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채우기 위한 날로 사용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이 본문을 무거운 마음으로 우리 각자의 삶에 가져와보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예배의 많은 자리에서 섬기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예배의 본질과 의미는 잃어버린 채,

그저 나의 이해관계를 위해, 나의 이해관계에 맞게 예배를 생각하고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위한 예배, 하나님을 기억하는 예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예배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관계를 꾸려가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시간을 보내는 부분들이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더 중요한 관심이 되어버린 것은 아닙니까?

 

오늘 많은 예배들이, 더욱이 청년들의 예배들이 이러한 모습으로 변질되어가는 것을 봅니다.

예배의 준비, 시간, 순서, 내용, 이러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시선에서 고려하는 것이 아닌 우리들의 입장과 형편에 맞추어 조정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생각하지 않고,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맞추어 주일을 보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예배가 세련되고, 시대에 맞는 예배로 여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지 관심도 없는 채로, 우리의 이기와 욕심들로 주일을 채워갑니다.

 

오늘 베냐민 지파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화해와 하나됨, 연합과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날에 하나님의 예배자들을 농락하는 일을 벌입니다.

좋은 이유와 설득력 있는 메시지와 행동이지만,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이 지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이용하시게끔 해야 합니다.

예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배의 주인공과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배의 주인 되시고 영광 받으셔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지켜나갈 때

사사기 시대와 같이 왕이 없는 방종한 삶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사기를 묵상했습니다.

사사기에 흐르는 하나님의 모습은 인내하시고, 다시 기회를 주시고, 참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악용하여, 오히려 하나님이 없다며 불신합니다.

하나님의 인내의 침묵을 하나님의 부재로 착각하며 방종한 삶을 살아갑니다.

이러한 사사기 시대는 오늘의 시대와 가슴 아플 정도로 참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하나님은 오늘도 다시 우리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 하나님께 기도 할 수 있는 기회,

하나님을 예배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비록 사사기와 같은 시대라 할지라도

우리의 회개로 인해 사사기와는 다른 결말로 어어지는 우리의 시대가 되길 기도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좋은 명분과 이유이지만 하나님의 말씀과의 대치되는 나의 상황들이 있다면 나눠봅시다.

 

2.하나님의 인내를 하나님의 부재로 오해한 적은 없습니까

   오늘도 우리를 위해 참고 인내하시는 하나님임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회개하는 기도문을 적어봅시다. 

 

 

 

ARMY7000 이웅조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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